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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현수원장 등록일 2010-06-07 10:54;01
제목   돌부처 이야기
 

돌부처 이야기


관악구에서 진료를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4년에 송파구로 병원을 옮겼다. 그 때 처음에는 강남구에서 자리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에게서 지금 내가 병원 하는 자리에 병원용 건물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도 송파구이니까 송파구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건물의 뼈대만 몇 층 올라가있었다. 분양사무실이 있는데 지키는 사람은 없고 안내 전화번호만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전화를 받아서 내가 신경정신과 의사인데 병원용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분양이 다 되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를 얻을 것이 있냐고 물었다. 또 없다고 했다. 자리가 괜찮아보였는데 아무 것도 없다고 하니 막막했다. 그래서 뭐라도 없냐고 했더니 없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 알아보라고 했다.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그래도 한 번 잘 찾아보라’고 조금 언성을 높여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하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서 지금의 진료실을 분양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 왜 내가 담당자가 없다고 할 때 알았다하고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알아보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나로서도 이상했다. 보통 그 정도 대화가 오고가면 알았다하고 포기할텐데 계속 붙들고 있었던 것이 나도 이상해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몇 년 전에 누구에게 들은 돌부처 이야기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부처 이야기의 영향이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새겨져 있어 그 영향으로 그런 반응이 나에게서 나왔던 것 같다.
돌부처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선승인 경봉스님이 참선을 하는 스님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우연히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전래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보니 이 이야기가 전래 동화책에 실려 있었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아마도 조선시대인 것 같다. 한 비단 장수가 비단을 짊어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비단을 팔았다. 비단 장수에게는 짊어지고 다니는 비단이 전 재산이다. 그래서 비단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고 철저히 챙겼다. 어떤 경우에도 비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넘게 되었다. 언덕을 넘다가 용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까지 봤지만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비단을 풀 섶에 풀어놓고 조그만 인기척이라도 바로 알 수 있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용변을 보고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비단이 없어졌다. 바로 사방을 둘러보고 이 쪽 저 쪽으로 뛰어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단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전 재산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가를 찾아갔다.
관가를 찾아가 원님에게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다.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던 원님이, 사람이 아니라도 그 광경을 본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비단 장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원님이 ‘그래도 뭔가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 있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 때 비단 장수에게 돌부처가 떠올랐다. “원님, 그 자리에 돌부처가 서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니 원님은 관아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돌부처가 수레에 실려 관가 마당에 왔다.
원님은 돌부처에게 “네 눈앞에서 이 사람의 비단이 모두 없어졌다. 이 사람에게 비단은 전 재산이다. 네가 말하면 이 불쌍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아라. 네가 본 일을 그대로 말만 하면 된다. 말해라.” 라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돌부처는 묵묵부답으로 서 있기만 했다. 원님은 한참을 기다린 후에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지금까지는 너를 증인 신분으로 대우하여 주었는데 계속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너를 사실을 은폐하는 죄인으로 다루겠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형틀에 묶고 말할 때까지 곤장을 치겠다.”
그래도 돌부처가 묵묵부답이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형틀에 묶고 말할 때까지 곤장을 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돌부처는 형틀에 묶인 채 곤장을 맞고 원님은 큰 소리로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이 돌부처에게 계속 말하라고 하는 일이 관가 마당에서 벌어졌다. 비단 장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이없고 저렇게 해서 일이 해결되겠나 했지만 다른 수도 없고 원님이 워낙 진지하게 일에 임하니 혹시 무슨 깊은 뜻이 있나 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졌다. 한 사람 두 사람 관가 담에 붙어 이 광경을 보기 시작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 퍼져 온 마을 사람이 관가로 몰려와 담에 올라가 관가 마당에서 벌어지는 지켜보고는 웃기 시작했다. ‘원님이 이상해졌어. 실성한 모양이야.’하면서 크게 웃어 관가가 웃음판이 되어 시끌시끌해졌다. 그러자 원님이 엄숙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는 이 억울한 비단 장수의 잃어버린 비단을 찾아주기 위해 죄인인 돌부처를 신문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웃어서 신성한 공무를 방해하는 사람은 잡아서 옥에 가둘 것이니 웃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웃음을 참지 못 하고 계속 웃었다. 그러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명령해 웃은 사람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다. 옥에 갇혀서도 사람들은 원님이 이상하다는 말만 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지나자 사람들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웃지 않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마을 분위기도 심각해졌다.
이 때 쯤 원님이 이방에게 마을에 방을 붙이라고 명령하였다. ‘집에 있는 비단을 한 필 가져오면 옥에 갇혀있는 사람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방이었다. 사람들이 옥에 갇혀있는 가족의 수만큼 비단을 가지고 관가로 왔다. 관졸들이 가져온 비단을 자세히 기록하고 해당되는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옥에 있던 사람들이 다 풀려나가자 원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비단을 모두 관가 마당에 쌓아놓고 비단 장수에게 자신의 비단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옛날 비단에는 표시가 있어 자신의 비단은 알아볼 수 있어서 비단 장수는 자신의 비단을 찾았다. 원님은 기록을 보고 그 비단을 가져온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비단을 훔친 경위를 자백 받았다. 이것이 대략의 돌부처 이야기의 내용이다.

경봉스님은 참선하는 스님들에게 참선하면서 길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고 원님이 돌부처 붙들고 비단 찾아주듯이 화두를 잡으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금해보고 길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경봉스님의 가르침이 돌부처 이야기 속에 잘 들어있다. 우리는 어렵다싶으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메시지이다. 윈스톤 처칠도 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포기하지 마십시오.’라는 한 마디만 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과거에는 개그맨이고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형래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실패는 없다. 다만 성공할 때까지 안 했을 뿐이다.’

돌부처 이야기에서 원님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아서 해결하는데, 우리는 가능성이 있는데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이제는 더 이상 해도 가능성이 없다는 정도까지는 노력하고 그 시점에서 돌부처 이야기를 떠올려 조금 더 노력한다면 우리가 처음에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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